냉장도 가열도 하는 오븐, 시작은 1994년 저녁 식탁

International Space Station mockup training
이미지 출처: NASA

퇴근하고 나면 왜 배달 앱부터 켜게 될까요?

야근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냉장고는 휑하고 몸은 천근만근이에요. 그럴 때 손은 저절로 휴대폰을 집어 배달 앱을 열죠. 많은 직장인이 비슷한 저녁을 반복해서 보내요.

1994년의 데이비드 맨스베리도 이런 고민을 안고 있었어요. 가족의 일정이 바빠서 집에서 만든 요리를 자주 먹지 못했거든요. 그는 패스트푸드 대신 집밥을 다시 식탁에 올릴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문제의 중심에는 요리 자체가 아니라 가족의 바쁜 일정이 있었어요. 장을 봐 두어도 요리할 틈이 없으면 재료는 냉장고 안에서 시들어 가요. 그래서 이 사연은 주방보다 시간표에서 출발한 셈이에요.

식재료를 사 놓고도 시간이 없어 못 쓴 날이 한 번쯤은 있지 않나요? 그 아쉬운 마음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에요. 그리고 이 출발점은 뜻밖에도 우주 분야와 이어져요.

천연가스 회사 사장과 NASA 글렌 연구소는 어떤 사이였을까요?

당시 맨스베리는 천연가스 공급 회사의 사장이었어요. 주방 가전과는 거리가 먼 직함처럼 들리죠. 그런데 NASA 글렌 연구소가 그 회사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였어요.

글렌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은 ISS 전력 시스템 작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었어요. 태양을 연구한 SOHO 탐사선과 카시니 탐사선에서도 일했어요. 스페이스 셔틀에 실린 실험에도 이름을 올렸고요.

우주정거장의 전기를 다루던 사람들과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사장님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아요. 하나는 지구 궤도, 다른 하나는 평범한 가정의 식탁이니까요. 두 세계는 한참 멀어 보여요.

그래도 기술은 쓰임새를 가리지 않아요. 같은 망치로 못도 박고 액자도 거니까요. 우주 임무에서 단련된 도구가 부엌까지 올 수 있다는 상상, 해볼 만하지 않나요?

View of Spacelab 2 pallet in the open payload bay
이미지 출처: NASA

웹 기술이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먼저 '임베디드 시스템'이라는 말부터 풀어볼게요. 기계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전용 컴퓨터를 뜻해요. 전기밥솥의 타이머나 전자레인지의 버튼을 읽어 내는 부품이 대표적이에요. 사람이 계속 붙어 있지 않아도 정해진 일을 해내도록 만들어진 장치죠.

웹은 우리가 브라우저에 주소를 입력할 때 쓰는 약속이에요. 주소를 보내면 어딘가의 컴퓨터가 화면을 돌려주죠. 이 약속을 기계 속 작은 컴퓨터에 심으면 기계도 하나의 웹사이트처럼 말을 걸 수 있어요. 사용자는 화면에서 상태를 보고 명령도 내릴 수 있어요.

글렌 연구소는 1996년에 '임베디드 웹 기술'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어요. 이 기술은 사용자가 인터넷으로 임베디드 시스템이 탑재된 원격 장치를 감시하거나 제어하게 해줘요. 우주비행사들은 ISS 안의 어느 노트북으로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실험 장치를 작동할 수 있어요.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 하나로 여러 가전을 다루는 장면과 닮은 구조예요. 우주정거장처럼 장비가 곳곳에 흩어진 공간에서는 한 자리에서 여러 장치를 살피는 방식이 도움이 돼요. 그 이유는 바로 다음 대목에서 조금 더 풀어볼게요.

우주에서는 왜 멀리서 기계를 다뤄야 할까요?

우주선이나 정거장 안을 떠올려 보세요. 좁은 공간에 장비와 전선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실험 장치도 여기저기 나뉘어 있어요. 장치마다 직접 찾아가 화면을 확인하고 버튼을 누르는 방식은 번거로울 수밖에 없어요.

우주에서는 사람의 시간이 귀한 자원이에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데 살펴봐야 할 장비는 많거든요. 한 자리에서 여러 기계의 상태를 확인하고 명령을 보낼 수 있으면 이동하고 기다리는 수고가 줄어들어요.

지구에서도 같은 고민이 있어요. 서버실 관리자는 컴퓨터가 놓인 방까지 가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접속해 상태를 확인해요. 건물의 보일러나 가게의 CCTV를 스마트폰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같은 발상이에요. 가까이 가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린다는 점이 공통점이에요.

그래서 원격 접속은 우주만의 기술이 아니라 장비와 사람이 떨어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쓸모가 있어요. 이 원리를 가정으로 옮기면 사람은 퇴근길에 있고 기계는 집에 있는 상황이 되겠죠. 우주정거장의 실험실과 우리 집 주방은 의외로 닮은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에요.

우주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부엌 이야기로 이어졌을까요?

맨스베리는 임베디드 웹 기술을 사용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TMIO라는 회사를 세웠어요. 천연가스 회사의 사장이 새 회사를 세운 셈이에요.

남의 비법 소스를 쓰려면 먼저 양해부터 구하는 게 예의잖아요. 승인이라는 단계는 그 인사와 닮은 데가 있어요. 좋은 기술일수록 쓰기 전에 거치는 절차가 있는 법이에요.

맨스베리의 고민은 1994년에 시작됐고, 소프트웨어는 1996년에 개발됐어요. 두 갈래의 흐름은 시간차를 두고 흘러가다 어디선가 만나요. 그 만남의 결과물이 바로 TMIO가 내놓은 제품이에요.

우주 분야 엔지니어들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한 가정의 저녁 고민과 맞닿는다니 신기해요. 거대한 기술이 작은 불편을 만나 쓸모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요. 그래서 거창해 보이는 연구도 결국 우리 일상을 향하곤 해요.

냉장하다가 알아서 요리하는 오븐은 어떤 모습일까요?

TMIO가 내놓은 제품의 이름은 커넥트아이오(ConnectIo)예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오븐이에요. 냉장과 가열을 모두 해내는 물건이에요. 냉장고와 오븐을 한 몸에 담았다니, 처음엔 상상이 잘 안 되죠?

이 오븐은 식사 시간을 입력하면 냉장 상태에서 조리 주기로 자동 전환돼요. 그래서 집에 도착할 때 요리가 완성되도록 해줘요. 사람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아니라 먹는 순간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기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때를 거꾸로 계산하는 일과 비슷해요. 도착 시각이 정해지면 출발 시각은 따라오니까요. 저녁 식사 시각에서 거꾸로 세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쉬워요.

오늘 저녁 전기밥솥의 예약 취사 버튼이나 현관 도어락을 한 번 유심히 들여다보세요. 그 작은 상자 속에는 사람이 곁에 없어도 알아서 해내도록 만들려던 누군가의 고민이 들어 있을지 몰라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GRC-SO-177)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