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음만 골라 지우는 우주의 산소, 명화를 살리다

고기를 구운 프라이팬 바닥에 까맣게 눌어붙은 자국, 한 번쯤 박박 문질러 보셨죠? 프라이팬이야 수세미로 닦으면 그만이지만, 불길을 겪은 그림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잘못 문지르는 순간 그을음과 함께 물감까지 묻어날 테니까요.

원자 산소 복원 프로그램으로 절반 복원된 클리블랜드 미술관 회화
이미지 출처: NASA

불에 그을린 그림, 손대지 않고 되살릴 수 있을까요?

불이 난 건물에서 간신히 건져 낸 그림 한 점을 떠올려 보세요. 불꽃은 피했더라도 표면에는 검은 막이 내려앉았어요. 물로 닦자니 번질 것 같고, 약품을 쓰자니 색이 변할 것 같아서 선뜻 손을 대기가 겁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자상 산소라는 기체는 화재로 손상된 미술품에서 탄소 함량이 높은 유기 화합물, 주로 그을음을 제거할 수 있어요. 게다가 그 과정에서 물감의 색상 변화를 일으키지 않아요.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한 줄이 복원가에게 얼마나 큰 의미일지 상상해 보면, 이 기술이 왜 반가운 소식인지 짐작이 가요. 이 기술은 미술품 복원뿐 아니라 문서 위조 감정, 수술용 이식재의 세균 오염물 제거에도 적용되어 왔어요. 하나의 기체가 그림과 서류와 의료 현장을 오가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우주선 코팅재 연구가 어떻게 미술관까지 왔을까요?

이 기술의 출발점은 미술관이 아니라 우주였어요. 글렌 연구센터의 전자기학 부서는 우주용 장기 코팅재의 부식 연구를 바탕으로 이 기술을 개발했어요. 코팅재는 쉽게 말해 장비 겉면에 입히는 보호막이에요.

베란다 난간의 페인트가 몇 해 지나면 들뜨고 벗겨지는 모습, 본 적 있을 거예요. 지구에서도 이런데, 쉽게 고치러 갈 수 없는 우주에서는 보호막이 오래 버텨 주는 일이 훨씬 중요해요. 그래서 보호막이 어떻게 닳아 가는지 정밀하게 따져 보는 연구가 꼭 필요해요.

닳는 방식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닳음을 다루는 법도 알게 될지 몰라요. 녹이 어떻게 스는지 아는 사람이 녹슨 자전거를 가장 잘 닦아 내는 것처럼요. 부식을 이해하려던 연구가 그림을 살리는 일로 이어졌다니, 참 멀리 돌아온 길이에요.

4711번 건물의 원자 산소 빔 시설 모습
이미지 출처: NASA

기술 원리: 산소 원자는 왜 그을음에만 달라붙을까요?

우리가 숨 쉬는 산소는 원자 두 개가 손을 맞잡은 O₂ 형태예요. 여기에 강한 에너지가 가해지면 손이 풀려서 외톨이 산소 원자(O)가 생겨요. 짝을 잃은 원자는 몹시 불안정해서, 가까이 있는 물질과 서둘러 결합하려 들어요.

지구 상층 대기나 우주 공간에는 이런 외톨이 산소 원자가 꽤 많아요. 그래서 우주선 겉면은 이 원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서서히 깎여 나가요. 앞서 말한 코팅재 연구가 필요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원자상 산소는 표면 수준에서 주로 수소, 탄소 및 탄화수소 중합체를 산화시키는 독특한 특성을 가져요. 그을음의 주성분이 탄소 쪽 유기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궁합이 보여요. 산소 원자가 탄소와 만나면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로 바뀌어 날아가요. 고체였던 그을음이 기체가 되어 사라지니, 문질러 닦아 낼 일이 없는 셈이에요.

불에 타는 것도 넓게 보면 산소와 탄소의 만남이에요. 다만 원자상 산소의 반응은 불꽃 없이 표면에서 차분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요. 그래서 겉만 골라 반응시키는 도구라는 비유가 잘 어울려요.

유화에서 잉크까지, 어디까지 통했을까요?

이 복원 기술은 유화에 처음 성공적으로 시험된 후 아크릴화, 수채화, 잉크로 확대 적용되었어요. 그림의 재료를 하나씩 넓혀 간 셈이에요. 이름만 나열해도 꽤 다른 재료들이에요.

유화는 기름기 머금은 물감을 두툼하게 올리고, 수채화는 물기 어린 물감이 종이에 얇게 스며요. 아크릴은 빨리 마르는 물감이고, 잉크는 선 하나로 승부를 보는 재료예요. 재료마다 성격이 이렇게 다르니, 하나를 통과했다고 다음도 문제없으리라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한 단계씩 넓혀 간 순서가 더 믿음직하게 느껴져요. 집 벽에 걸린 포스터나 서랍 속 오래된 편지도 재료로 보면 저마다 성격이 달라요. 어떤 물건이든 시간이 지나면 먼지와 연기를 머금게 마련이라, 이 기술의 쓰임새가 더 궁금해져요.

위조 문서와 무릎 이식재까지, 쓰임새는 어디로 이어졌을까요?

문서의 법의학적 분석을 전담하는 다국적 비영리 전문 기관이 문서 위조 감정 분야에 이 공정을 성공적으로 적용했어요. 그림을 위해 쓰이던 기술이 서류의 진위를 가리는 일에도 쓰인 거예요. 표면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 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두 분야는 닮은 구석이 있어요.

의료 쪽으로도 길이 열렸어요. 원자상 산소 기술은 수술 전 정형외과용 고관절 및 무릎 이식재를 소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어요. 몸속에 들어갈 물건이라 표면을 얼마나 깨끗이 다루느냐가 궁금해지는 대목이에요.

클리블랜드 클리닉 재단과 글렌 팀의 추가 공동 연구에 따르면 이 가스에 의한 표면 거칠어짐이 세포 접착력을 향상시켜요. 사포로 살짝 문지른 나무에 페인트가 더 잘 먹는 것처럼, 표면의 질감이 붙는 힘을 바꾸는 일은 일상에서도 흔해요. 그을음을 지우는 성질과 표면을 거칠게 만드는 성질이 같은 가스에서 나온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벽에 걸린 액자나 서랍 속에서 누렇게 바랜 서류를 오늘은 한 번 더 들여다보세요. 그 표면 위에서 보이지 않는 산소 원자 하나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GRC-SO-154)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