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음만 골라 지우는 우주의 산소, 명화를 살리다
고기를 구운 프라이팬 바닥에 까맣게 눌어붙은 자국, 한 번쯤 박박 문질러 보셨죠? 프라이팬이야 수세미로 닦으면 그만이지만, 불길을 겪은 그림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잘못 문지르는 순간 그을음과 함께 물감까지 묻어날 테니까요.

이미지 출처: NASA
불에 그을린 그림, 손대지 않고 되살릴 수 있을까요?
불이 난 건물에서 간신히 건져 낸 그림 한 점을 떠올려 보세요. 불꽃은 피했더라도 표면에는 검은 막이 내려앉았어요. 물로 닦자니 번질 것 같고, 약품을 쓰자니 색이 변할 것 같아서 선뜻 손을 대기가 겁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자상 산소라는 기체는 화재로 손상된 미술품에서 탄소 함량이 높은 유기 화합물, 주로 그을음을 제거할 수 있어요. 게다가 그 과정에서 물감의 색상 변화를 일으키지 않아요.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한 줄이 복원가에게 얼마나 큰 의미일지 상상해 보면, 이 기술이 왜 반가운 소식인지 짐작이 가요. 이 기술은 미술품 복원뿐 아니라 문서 위조 감정, 수술용 이식재의 세균 오염물 제거에도 적용되어 왔어요. 하나의 기체가 그림과 서류와 의료 현장을 오가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우주선 코팅재 연구가 어떻게 미술관까지 왔을까요?
이 기술의 출발점은 미술관이 아니라 우주였어요. 글렌 연구센터의 전자기학 부서는 우주용 장기 코팅재의 부식 연구를 바탕으로 이 기술을 개발했어요. 코팅재는 쉽게 말해 장비 겉면에 입히는 보호막이에요.
베란다 난간의 페인트가 몇 해 지나면 들뜨고 벗겨지는 모습, 본 적 있을 거예요. 지구에서도 이런데, 쉽게 고치러 갈 수 없는 우주에서는 보호막이 오래 버텨 주는 일이 훨씬 중요해요. 그래서 보호막이 어떻게 닳아 가는지 정밀하게 따져 보는 연구가 꼭 필요해요.
닳는 방식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닳음을 다루는 법도 알게 될지 몰라요. 녹이 어떻게 스는지 아는 사람이 녹슨 자전거를 가장 잘 닦아 내는 것처럼요. 부식을 이해하려던 연구가 그림을 살리는 일로 이어졌다니, 참 멀리 돌아온 길이에요.

이미지 출처: NASA
기술 원리: 산소 원자는 왜 그을음에만 달라붙을까요?
우리가 숨 쉬는 산소는 원자 두 개가 손을 맞잡은 O₂ 형태예요. 여기에 강한 에너지가 가해지면 손이 풀려서 외톨이 산소 원자(O)가 생겨요. 짝을 잃은 원자는 몹시 불안정해서, 가까이 있는 물질과 서둘러 결합하려 들어요.
지구 상층 대기나 우주 공간에는 이런 외톨이 산소 원자가 꽤 많아요. 그래서 우주선 겉면은 이 원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서서히 깎여 나가요. 앞서 말한 코팅재 연구가 필요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원자상 산소는 표면 수준에서 주로 수소, 탄소 및 탄화수소 중합체를 산화시키는 독특한 특성을 가져요. 그을음의 주성분이 탄소 쪽 유기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궁합이 보여요. 산소 원자가 탄소와 만나면 일산화탄소나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로 바뀌어 날아가요. 고체였던 그을음이 기체가 되어 사라지니, 문질러 닦아 낼 일이 없는 셈이에요.
불에 타는 것도 넓게 보면 산소와 탄소의 만남이에요. 다만 원자상 산소의 반응은 불꽃 없이 표면에서 차분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요. 그래서 겉만 골라 반응시키는 도구라는 비유가 잘 어울려요.
유화에서 잉크까지, 어디까지 통했을까요?
이 복원 기술은 유화에 처음 성공적으로 시험된 후 아크릴화, 수채화, 잉크로 확대 적용되었어요. 그림의 재료를 하나씩 넓혀 간 셈이에요. 이름만 나열해도 꽤 다른 재료들이에요.
유화는 기름기 머금은 물감을 두툼하게 올리고, 수채화는 물기 어린 물감이 종이에 얇게 스며요. 아크릴은 빨리 마르는 물감이고, 잉크는 선 하나로 승부를 보는 재료예요. 재료마다 성격이 이렇게 다르니, 하나를 통과했다고 다음도 문제없으리라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한 단계씩 넓혀 간 순서가 더 믿음직하게 느껴져요. 집 벽에 걸린 포스터나 서랍 속 오래된 편지도 재료로 보면 저마다 성격이 달라요. 어떤 물건이든 시간이 지나면 먼지와 연기를 머금게 마련이라, 이 기술의 쓰임새가 더 궁금해져요.
위조 문서와 무릎 이식재까지, 쓰임새는 어디로 이어졌을까요?
문서의 법의학적 분석을 전담하는 다국적 비영리 전문 기관이 문서 위조 감정 분야에 이 공정을 성공적으로 적용했어요. 그림을 위해 쓰이던 기술이 서류의 진위를 가리는 일에도 쓰인 거예요. 표면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 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두 분야는 닮은 구석이 있어요.
의료 쪽으로도 길이 열렸어요. 원자상 산소 기술은 수술 전 정형외과용 고관절 및 무릎 이식재를 소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어요. 몸속에 들어갈 물건이라 표면을 얼마나 깨끗이 다루느냐가 궁금해지는 대목이에요.
클리블랜드 클리닉 재단과 글렌 팀의 추가 공동 연구에 따르면 이 가스에 의한 표면 거칠어짐이 세포 접착력을 향상시켜요. 사포로 살짝 문지른 나무에 페인트가 더 잘 먹는 것처럼, 표면의 질감이 붙는 힘을 바꾸는 일은 일상에서도 흔해요. 그을음을 지우는 성질과 표면을 거칠게 만드는 성질이 같은 가스에서 나온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벽에 걸린 액자나 서랍 속에서 누렇게 바랜 서류를 오늘은 한 번 더 들여다보세요. 그 표면 위에서 보이지 않는 산소 원자 하나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GRC-SO-154)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