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는 나노 소재를 풀어낸 회사, 우주에서 운동장까지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배트나 자전거 부품을 들어 보고 '어, 생각보다 가볍네' 하고 중얼거린 적 있지 않나요?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한다는 조건은 운동 장비만의 숙제가 아니에요. 로켓이나 위성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절박한 숙제예요.

이 글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탄소 소재 이야기예요. 연구실에서 출발한 소재가 어떻게 손에 쥐는 물건 가까이까지 왔는지 차근차근 따라가 볼게요.

카시니호가 촬영한 타이탄 탄화수소 호수 주변 표면 모자이크
이미지 출처: NASA

2001년 텍사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시작은 2001년이에요. 텍사스주 리차드슨에 있는 자이벡스 코퍼레이션이 탄소 나노튜브의 화학을 바꾸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핵심은 나노튜브의 뛰어난 특성을 만들어 내는 분자 구조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일상에 빗대 볼게요. 새 옷을 입혀 보려다 사람의 체형까지 바뀌어 버린다면 곤란하겠죠? 겉만 바꾸고 속은 그대로 두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워요.

성질을 바꾸되 뼈대는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이 기술의 핵심 난관이었던 셈이에요. 왜 뼈대를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지는 다음 소제목에서 이어져요. 먼저 탄소 나노튜브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볼게요.

탄소 나노튜브는 왜 가볍고 단단할까요?

탄소 나노튜브는 이름 그대로 탄소 원자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아주 가느다란 관이에요.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이어진 얇은 판을 돌돌 말아 놓은 모습을 떠올리면 쉬워요. 굵기는 머리카락보다 수천 배 이상 가늘어서 눈으로는 볼 수 없어요.

종이 한 장은 손으로 쉽게 구겨지지만, 돌돌 말아 기둥으로 세우면 훨씬 큰 힘을 버텨요. 원자 수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요. 탄소끼리 맺은 육각형 결합이 워낙 단단한 데다 관 모양이 힘을 고루 나눠 받아서, 무게에 비해 아주 튼튼한 재료가 돼요.

그런데 이 가느다란 관들에게는 서로 끌어당겨 한데 뭉치는 성질이 있어요. 삶은 스파게티 면이 한 덩어리로 엉겨 붙은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엉킨 덩어리 상태에서는 낱개가 가진 장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다른 재료와 섞을 때는 골고루 풀어 주는 일이 관건이에요.

그래서 나노튜브 표면의 화학을 조절해 주변 물질과 잘 어울리게 만드는 방법이 필요해요. 다만 표면을 지나치게 건드려 구조가 망가지면 애초의 강점마저 사라지고 말아요. 앞에서 말한 '겉만 바꾸고 속은 지키는' 기술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뭉친 가루를 어떻게 골고루 풀었을까요?

2003년 2월, 존슨 우주 센터가 이 기술의 가능성을 인정했어요. 탄소 나노튜브 표면 화학의 합리적 공학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자이벡스와 1단계 SBIR 계약을 시작했어요. 이름에 '1단계'가 붙어 있는 만큼,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1단계 프로그램에서 자이벡스는 유기 용매에 나노튜브를 고농도로 녹인 용액을 만드는 능력을 입증했어요. 찬물에 미숫가루를 급하게 탔다가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본 적 있죠? 뭉치지 않고 풀리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장면만 떠올려도 짐작이 가요.

또 하나의 성과는 에폭시 같은 폴리머 안에서 나노튜브를 우수하게 분산시키는 능력이었어요. 반죽에 견과류를 넣을 때 한쪽으로 몰리면 어떤 조각은 꽉 차고 어떤 조각은 텅 비어 버려요. 골고루 퍼져야 어디를 베어 물어도 같은 맛이 나는 것처럼, 재료도 고르게 섞여야 제 몫을 해요.

액체에 풀기와 플라스틱 속에 퍼뜨리기, 두 시험의 공통점은 결국 '얼마나 고르게 섞이느냐'가 아닐까요? 아무리 좋은 소재도 뭉쳐 있으면 덩어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돼요.

케네디 우주 센터 조립 동으로 이동 중인 우주왕복선 초경량 외부 탱크
이미지 출처: NASA

우주 센터는 왜 가벼운 소재에 눈길을 줄까요?

1단계가 성공을 거두자 자이벡스는 2004년 1월 존슨 우주 센터와 2단계 SBIR 계약을 체결했어요. 목표는 NASA에서 쓸 매우 강하고 가벼운 계층적 탄소 나노튜브 복합 재료를 제작하는 것이었어요. 존슨 우주 센터와 맺은 계약이 두 번으로 늘어난 셈이에요.

우주 분야에서 '가볍다'는 말은 들기 편하다는 뜻만이 아니에요. 로켓은 실어 나르는 무게가 늘수록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고, 그만큼 발사 비용도 불어나요. 이삿짐을 싸 본 사람이라면 박스 하나가 늘 때마다 트럭 크기가 달라지는 기분을 알 거예요.

동시에 발사 때의 진동과 충격, 우주 공간의 가혹한 환경도 견뎌야 해요. 가벼움과 튼튼함은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라서, 둘을 한꺼번에 잡아 주는 재료는 늘 귀한 대접을 받아요. 소재 연구자들이 나노 크기의 재료에 눈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연구실의 소재는 어떻게 매장 가까이 왔을까요?

눈여겨볼 건 시간 순서예요. 1단계 결과를 바탕으로 자이벡스는 2003년 9월부터 자사 웹사이트에서 NanoSolve라는 상업명으로 용해된 탄소 나노튜브를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2단계 계약을 체결한 2004년 1월보다 넉 달 앞선 시점이에요.

2단계 작업이 진행 중이던 2004년 9월에는 이스턴 스포츠가 새로운 자전거 부품 라인에 자이벡스의 탄소 나노튜브 기술을 사용한다고 발표했어요. 우주 센터와 함께하는 연구가 한창인 때에 운동용품 쪽에서도 이 기술을 찾은 거예요.

이듬해인 2005년에 이스턴 스포츠는 하키와 야구 장비를 한 단계 발전시키려고 다시 자이벡스와 NanoSolve 기술을 이용했어요. 한 번 쓰고 끝난 게 아니라 다시 찾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와요.

우주를 위한 연구와 운동장 위의 장비가 한 줄로 이어진다니, 신기하지 않나요? 거창한 기술일수록 의외로 가까운 물건과 닿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집 안에서도 비슷한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택배 상자를 뜯어 보면 종이 사이에 물결 모양 층이 끼어 있는 골판지가 눈에 띄어요. 얇은 종이 두 장 사이에 주름진 층을 넣었을 뿐인데 가볍고 잘 버티잖아요.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도 전혀 다른 힘을 낸다는 걸 보여 주는 좋은 예예요.

철근 콘크리트도 비슷해요. 눌리는 힘에 강한 콘크리트와 당기는 힘에 강한 철근이 서로의 약점을 채워 줘요. 이렇게 성질이 다른 재료를 섞어 장점을 모은 것을 복합 재료라고 불러요.

가벼운 물건을 집어 들 때, 그 가벼움이 어디서 왔을지 한 번쯤 궁금해해 보면 어때요? 손에 쥔 물건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의 고민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JSC-SO-229)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