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 방울이 구부러지는 화면을 만든 방법

이사 가는 날 거실 TV를 옮기다가 모서리가 벽에 스치면 심장이 철렁하죠. 유리판 한 장이 그렇게 조심스러운 물건이라는 걸 그때서야 실감해요. 그런데 화면이 벽지처럼 둘둘 말리고, 조금 부딪혀도 끄떡없다면 어떨까요? 이런 상상 뒤에는 아주 작은 유리 방울을 만드는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세계 최초의 재사용 가능한 우주선인 우주왕복선
이미지 출처: NASA

두 회사가 막혀 있던 곳은 어디였을까요?

미시간주 엡실랜티의 Microsphere Systems(MSI)와 오하이오주 톨레도의 Imaging Systems Technology(IST)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넘어 보려 했지만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회사 이름이 길고 낯서니 앞글자만 따서 MSI, IST로 기억해 두면 편해요. 같은 벽 앞에서 한참을 끙끙대 본 경험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있을 거예요.

이때 NASA의 글렌 개럿 모건 상업화 이니셔티브(GMCI)가 두 기업을 돕겠다고 나섰어요. GMCI는 글렌 연구소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의 핵심 인력을 모아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소집했어요. 서로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안에서만 맴돌던 문제가 바깥의 시선을 만나면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해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은 한때 대형 TV 매장에서 자주 들어 봤을 거예요. 그런데 화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분은 많지 않아요. 그 속을 먼저 들여다보면 두 회사가 왜 그렇게 애를 먹었는지 이해하기 쉬워져요.

화면 속 작은 방들은 어떻게 빛을 낼까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의 기본 원리는 네온사인이나 형광등과 닮았어요. 유리 속에 든 기체에 전기를 흘리면 방전이 일어나고, 그때 생긴 자외선이 색을 내는 형광 물질을 때려 눈에 보이는 빛이 만들어져요. 이 빛 한 점이 화면의 점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화면 전체는 아주 작은 형광등 수백만 개를 바둑판처럼 깔아 놓은 셈이에요. 칸마다 빨강, 초록, 파랑 중 하나를 맡고, 전기를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밝기가 달라져요. 세 가지 빛이 섞이면 우리가 보는 수많은 색이 나와요.

기체를 담는 그릇은 두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해요. 기체가 새지 않게 꽉 막아 줘야 하고, 안에서 나온 빛이 밖으로 빠져나오도록 투명해야 해요. 전구 유리가 뿌옇게 변하면 불빛이 흐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그릇의 투명도가 곧 화면의 선명도와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릇의 모양도 중요해요. 달걀 껍데기나 비눗방울처럼 둥근 껍데기는 바깥에서 오는 힘을 고르게 나눠 받는 모양으로 알려져 있어요. 둥근 유리 알갱이를 화면의 한 칸으로 쓴다는 발상이 자연스러운 것도 그래서예요.

유리 방울의 색은 왜 변해 버렸을까요?

두 회사에 필요한 건 다양한 가스로 채울 수 있는, 속이 빈 미세한 유리 구체를 만드는 시스템이었어요. 풍선 속에 원하는 기체를 넣는데 그 풍선이 유리로 되어 있고 아주 작다고 상상하면 쉬워요. 비눗방울을 불어 본 기억이 있다면 감이 올 거예요.

문제는 열이었어요. 금속 노즐 끝에서 미세한 유리 방울이 만들어지려면 아주 높은 온도가 필요했는데, 그 열 때문에 마이크로스피어가 심하게 변색됐어요. 식빵을 센 불에 오래 구우면 겉이 갈색으로 변하는 걸 본 적 있을 거예요. 유리와 빵은 다르지만, 뜨거운 불이 재료의 모습을 바꿔 놓는다는 감각은 비슷해요.

변색이 왜 그렇게 아쉬울까요? 화면은 안쪽 빛이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릇이 색을 띠면 빛이 먼저 걸러지고 말아요. 선글라스를 낀 채로 그림을 그리면 색을 제대로 고르기 어려운 것과 비슷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색이 변한 그릇은 화면용으로 반가울 수 없어요.

2020년 국제우주정거장 구성 모습
이미지 출처: NASA

인산염 유리라는 답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NASA의 첨단 금속, 세라믹, 유리 분야 전문가 팀은 투명함을 지킬 수 있는 인산염 유리 조성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어요. 요리에 빗대면 레시피의 재료 배합을 새로 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답이 나오기까지 한 분야만 파서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눈여겨볼 점은 전문가들의 출신 분야가 금속, 세라믹, 유리로 갈린다는 거예요. 이웃 분야에서 해법이 튀어나오는 일은 우리 일터에서도 흔해요. 개발자와 디자이너, 영업 담당자가 한 회의실에 앉았을 때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처럼요.

'조성'이라는 말이 낯설죠? 쉽게 말해 유리를 만들 때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섞느냐는 뜻이에요. 같은 밀가루라도 비율이 다르면 빵이 되기도 하고 수제비가 되기도 하잖아요. 인산염 유리는 인산염이라는 성분을 중심에 둔 유리 배합이라고 이해하면 돼요.

구부려도 선명한 화면은 어디까지 갈까요?

이렇게 만든 마이크로스피어는 이미지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윤곽과 모양으로 만들 수 있어서, IST의 새로운 플라즈마 디스플레이의 핵심 부품이 되었어요. 모양이 자유로운데 그림이 일그러지지 않는다는 건 화면 설계자에게 꽤 큰 자유예요. 이 구체는 유연한 것과 단단한 것을 가리지 않고 패널에 적용되며, 주소 지정이 가능한 픽셀 요소인 플라즈마 스피어 디스플레이의 기반이 돼요. 주소 지정이라는 말은 택배 주소처럼 하나하나를 정확히 불러서 켜고 끌 수 있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이면 쉬워요.

성능은 어땠을까요? 이 디스플레이는 기존 플라즈마 방식과 똑같이 밝고 완전한 색을 내면서도 매우 튼튼하고, 넓은 면적의 유연한 화면을 낮은 비용으로 만들 해법이 될 수 있어요. 밝기를 포기하고 튼튼함을 얻은 게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튼튼함과 유연함은 우주 장비에서도 반가운 조건이에요. 로켓이 날아오를 때는 심한 진동이 생기고, 우주 공간에서는 온도 변화가 크고, 선내 공간은 넉넉하지 않아요. 그래서 잘 깨지지 않고 놓일 자리에 맞춰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소재가 늘 환영받아요.

지금 보고 있는 화면 앞에서 잠깐 눈을 가까이 대 보세요. 그 점 하나하나를 감싼 투명한 껍데기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을지 떠올리게 될 거예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GRC-SO-164)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