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실내를 전기 없이 쾌적하게 식히는 기술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에서 히트파이프 실험을 진행하는 우주비행사
이미지 출처: NASA

여름철 에어컨을 켜면 왜 추워지기만 할까요?

한여름 장마철에 방 안이 눅눅해서 에어컨을 세게 틀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습기를 없애려고 온도를 한참 낮추다 보면, 바닥과 공기가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겉옷을 찾아 입게 되곤 해요. 그러다 너무 추워서 전원을 끄면 금방 다시 끈적한 습기가 밀려와 불쾌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되죠.

매우 습한 환경에서 일반 에어컨은 실내 공기를 과냉각한 후 다시 데워야 해요. 공기 속에 숨은 수분을 쥐어짜 내듯 짜내려면 일단 이슬점 이하로 차갑게 얼려야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차가워진 공기를 그대로 방에 보내면 사람이 견디기 힘들 만큼 춥기 때문에, 별도의 열을 가해서 사람이 지내기 좋은 온도로 다시 높여야 해요.

냉각하느라 전기를 잔뜩 쓰고, 다시 데우느라 전력을 또 소모하는 셈이에요. 차갑게 만든 공기를 다시 따뜻하게 덥혀야 한다니 무언가 낭비처럼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차가운 공기의 기운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던 차에 우주를 연구하던 기술이 해답을 내놓았어요.

전력 하나 없이 열만 쏙 옮겨주는 기술 원리

공기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등장한 핵심 부품이 바로 히트파이프예요. 히트파이프는 내부가 진공에 가깝게 밀봉된 금속 관 속에 소량의 작동 유체를 넣은 도구예요. 전기를 연결하는 전선이나 모터가 전혀 없어도, 오직 물리적인 상변화와 압력 차이만으로 한쪽의 열을 다른 쪽으로 순식간에 실어 날라요.

따뜻한 공기가 닿는 쪽에서는 파이프 내부의 액체가 열을 흡수하면서 기체로 증발해요. 이렇게 기체가 된 물질은 관 내부의 압력 차이를 타고 차가운 반대편으로 빠르게 이동하죠. 반대편 끝에 도달한 기체는 차가운 외벽에 열을 넘겨주면서 다시 액체로 응축되고, 내부 미세 다공성 구조의 모세관 현상을 따라 원래 자리로 돌아와요.

빨대 안에서 액체와 기체가 스스로 꼬리를 물고 돌면서 열을 쉼 없이 퍼 나르는 구조라고 상상하시면 쉬워요. 기화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일반 구리나 알루미늄 막대보다 열을 전달하는 능력이 수백 배나 높아요. 어떤 외부 동력도 쓰지 않으면서 주변의 온도 차이만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열 고속도로인 셈이에요.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의 모습
이미지 출처: NASA

우주선 냉각 고민에서 시작된 새로운 제습 방식

공기가 전혀 없는 텅 빈 우주 공간에서는 뜨거워진 장비를 식히는 일이 지구보다 훨씬 까다로워요. 지구에서는 뜨거운 물체 주위로 바람이 불면서 열이 자연스레 흩어지지만,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는 대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전자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밖으로 빠르게 유도해 방출하는 장치로 히트파이프를 널리 써왔어요.

우주선 냉각 문제를 다루던 연구진은 이 똑똑한 관을 지상의 에어컨에 적용해 보기로 했어요. 전직 STAC 연구원이었던 딘 씨는 NASA 계약을 통해 히트파이프 기반의 제습 장치를 고안했답니다. 우주 비행체를 위해 갈고닦았던 정밀한 열 제어 아이디어가 지상의 눅눅한 공기를 해결하는 생활 기술로 내려앉은 것이죠.

우주에서 검증된 기술은 지상에서도 놀라울 만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작동했어요. 복잡한 기계 장치나 깨지기 쉬운 부품을 주렁주렁 달지 않고도, 공기 통로에 금속 파이프를 영리하게 배치하는 것만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기 흐름을 만들어냈거든요. 무거운 장비를 띄울 수 없는 우주선의 설계 철학이 일상 장비에도 그대로 스며든 셈이에요.

공기를 미리 식히고 다시 쾌적하게 되돌리는 순환

이 독특한 제습 장치는 공기가 에어컨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똑똑하게 열을 주고받아요. 해당 시스템은 히트파이프를 사용해 공기를 미리 냉각해요. 덥고 습한 바깥 공기가 에어컨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파이프에 먼저 열을 빼앗기면서 1차로 온도가 떨어지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한 단계 식혀진 공기가 지나가면, 에어컨의 냉각 코일이 열과 습기를 제거해요. 이미 공기가 차가워진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냉각 코일은 힘들이지 않고 공기 속 수분을 아주 쉽게 쥐어짜 내어 이슬로 맺히게 만들 수 있죠. 코일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구조예요.

습기가 쏙 빠져나간 공기는 아주 차갑고 과냉각된 상태가 되는데, 이때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나요. 히트파이프는 과냉각된 공기를 쾌적한 온도로 되돌려 놓아요. 처음에 들어오는 더운 공기에서 빼앗아 두었던 열을, 나가는 찬 공기에 얹어주는 거예요. 이 히트파이프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아요. 전기를 한 톨도 쓰지 않고도, 전형적인 에너지 절감률은 15~20% 수준에 달해요.

버려지는 열을 모아 온수까지 만드는 응용 기술

열을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기술은 제습기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었어요. 딘 컴퍼니는 기존 냉난방기에 추가 설치할 수 있는 개조형 냉각 코일인 'Z' 코일도 제조해요. 새 기계를 전부 새로 살 필요 없이, 기존에 쓰던 장치에 덧붙여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게다가 이 장치는 무상으로 온수도 제공해요. 실내를 시원하게 식히는 과정에서 어차피 밖으로 버려져야 했던 폐열을 알뜰하게 붙잡아 물을 데우는 데 쓰기 때문이에요. 냉방을 하면 할수록 따뜻한 물이 덤으로 생겨나니, 버려지던 에너지가 생활의 유용한 자원으로 탈바꿈한 셈이에요.

친환경 에너지에 대한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연의 빛을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갔어요. 이 회사는 태양광 에어컨과 태양광 구동 워터 펌프도 개발했답니다. 햇빛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어 전력망에 부하가 걸리는 한낮에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공간을 식히고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친환경 장치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지금 우리 머리 위에서 조용히 바람을 뿜어내는 에어컨 안에도, 차가운 우주 진공 속에서 장비를 지켜내던 지혜가 숨 쉬고 있을지 몰라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KSC-SO-52)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