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 장갑의 비밀이 겨울 옷 속에 들어온 이야기

이미지 출처: NASA
찬 바람 부는 날 왜 두꺼운 옷만으로는 부족할까요?
한겨울에 솜이 빵빵하게 들어간 롱패딩을 껴입고 나갔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지하철 계단을 조금만 급하게 뛰어 올라가도 등에 땀이 차면서 순식간에 답답해지잖아요. 그러다 다시 차가운 바깥바람을 맞으면 그 땀이 식으면서 온몸이 으스스 떨리곤 하죠.
우리가 보통 입는 두꺼운 옷들은 공기층을 가둬서 몸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만 해요. 그래서 외부 기온이 변하거나 내 몸에서 열이 뿜어져 나올 때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참 어려워요. 몸이 더워지면 열을 적당히 식혀주고, 추워지면 다시 따뜻하게 데워주는 똑똑한 옷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치 옷감 속에 아주 작은 온도 조절기가 수억 개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놀랍게도 이런 상상 같은 기술은 아주 오래전, 극단적인 추위와 더위가 공존하는 우주 공간을 정복하려던 사람들의 고민 속에서 출발했어요. 그 비밀은 바로 물질의 상태 변화라는 단순한 과학 원리에 숨어 있어요.
얼음이 녹을 때 열을 훔쳐 가는 상변화의 원리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얼음이 물로 녹을 때 주변의 열을 흠뻑 빨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반대로 물이 꽁꽁 얼어붙어 얼음이 될 때는 자신이 품고 있던 열을 바깥으로 고스란히 뿜어내죠. 이렇게 고체에서 액체로, 혹은 액체에서 고체로 상태가 바뀌는 물질을 전문 용어로 상변화 물질이라고 불러요.
음료수에 각얼음을 넣으면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음료가 차가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예요. 얼음이 녹는 동안 들어오는 열을 전부 자신의 상태를 바꾸는 데 써버리기 때문에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는 거예요. 즉, 물질이 형태를 바꾸는 바로 그 순간에 주변의 온도를 아주 끈질기게 붙잡아두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죠.
만약 이런 성질을 가진 물질을 머리카락보다 훨씬 잘게 쪼개서 아주 작은 캡슐 안에 가둬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주변이 더워지면 캡슐 속 물질이 녹으면서 열을 꿀꺽 삼키고, 주변이 추워지면 굳으면서 열을 사방으로 내뿜게 돼요. 섬유 한 올 한 올 속에 수없이 많은 초소형 얼음팩과 핫팩을 동시에 심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이 마이크로캡슐들은 워낙 작아서 옷감 표면에 붙이거나 실 속에 섞어 짜도 옷이 무거워지거나 뻣뻣해지지 않아요. 게다가 캡슐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있으니, 안쪽 물질이 녹아 액체가 되더라도 밖으로 흘러나올 염려가 전혀 없어요. 그냥 평범한 천처럼 부드러운데 스스로 온도를 맞추는 마법 같은 바탕이 이렇게 완성되는 거예요.

이미지 출처: NASA
우주비행사의 차가운 손가락을 지켜라
지구에서는 공기가 열을 골고루 섞어주지만, 공기가 아예 없는 우주 공간은 그야말로 지옥과 천국이 맞닿아 있는 곳이에요. 태양 빛이 정면으로 내리쬐는 곳은 프라이팬처럼 달아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차갑게 얼어붙거든요.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으로 나가 작업을 할 때 가장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부위가 바로 손가락 끝이었어요.
우주복 몸통 부분은 기계 장치를 넣어서 온도를 조절하기 비교적 수월하지만, 장갑은 아주 섬세한 손동작을 해야 하잖아요. 두껍고 둔탁한 열선이나 파이프를 잔뜩 집어넣으면 볼트 하나 제대로 조일 수 없는 벙어리장갑이 되어버리니까요. 얇고 유연하면서도 손의 온도를 일정하게 지켜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소재가 절실했던 거예요.
NASA의 존슨 우주 센터와 미국 공군은 이 까다로운 숙제를 풀기 위해 중소기업 혁신 연구 계약을 맺었어요. 우주비행사의 장갑 낀 손을 따뜻하게 지켜주기 위해 미세하게 캡슐화된 상변화 물질이 그렇게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어요. 부피를 거의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차가운 금속 장비를 쥐었을 때 손끝의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막아주는 최첨단 단열 기술이었죠.
연구실의 우주 기술이 우리 옷장으로 걸어 나오기까지
우주비행사의 장갑을 위해 탄생한 이 놀라운 기술은 본래 Triangle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oration이라는 연구 기관에서 개발되었어요. 하지만 실험실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가 사서 입는 옷이 될 수는 없었어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옷감에 안정적으로 적용하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으니까요.
여기서 Gateway Technologies, Inc.라는 기업이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어요. 이 회사는 원래 개발되었던 섬유 단열 기술을 이어받아 상업적으로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았어요. 극한의 우주 환경을 버텨낸 뛰어난 기술을 지구 위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쓸 수 있도록 다듬는 작업에 들어간 거예요.
Gateway는 이 뛰어난 체온 조절 기술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OUTLAST라는 멋진 상표명을 붙이고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어요. 우주비행사의 손가락을 차가운 우주 공간으로부터 지켜내던 그 작고 둥근 마이크로캡슐들이, 이제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일상복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오게 된 셈이에요.
스키장부터 깊은 바닷속까지 누비는 스마트한 섬유
이 상변화 섬유가 가진 매력은 단순히 추위를 막아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너무 더워지는 것까지 스스로 막아준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아주 거친 환경에서 활동해야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먼저 이 기술을 반기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이 제품의 적용 분야는 겉옷이나 일반 담요뿐만 아니라 주택 단열재로도 뻗어나갔어요.
심지어 불길과 싸우는 소방관들을 위한 소방용 보호 장비나, 차가운 물속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는 스쿠버 다이빙 슈트에도 쓰이고 있어요. 뜨거운 열기와 살을 에는 한기를 동시에 방어해야 하는 전문가들에게 이보다 더 든든한 방패는 없었을 테니까요.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 장비 속에서 우주 기술이 조용히 제 몫을 다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미 우리 주변 매장에서도 OUTLAST로 만든 물건들을 정말 쉽게 만나볼 수 있어요. 발에 땀이 차거나 시리지 않게 돕는 부츠와 신발 안감부터 한겨울 칼바람을 막아주는 겨울용 헤드기어가 대표적이에요. 사냥이나 야외 스포츠를 즐길 때 쓰는 모자들은 물론이고, 스키장에서 손을 쾌적하게 감싸주는 남녀용 스키 장갑까지 이미 시장에 나와 있어요.
오늘 퇴근길에 신고 있는 방한화나 옷걸이에 걸린 겨울 외투의 안쪽 라벨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어쩌면 여러분의 체온을 말없이 맞춰주고 있는 그 얇은 천 속에, 머나먼 우주를 유영하던 비행사의 따뜻한 손길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평범해 보이는 일상용품 속에도 상상보다 훨씬 거대하고 차가운 우주를 이겨낸 지혜가 조용히 숨 쉬고 있어요.
참고 자료: NASA Spinoff 공식 사례 (JSC-SO-80) · spinoff.nasa.gov
이미지는 NASA 공개 자료이며, 이 글은 NASA의 공식 입장이나 보증과 무관합니다.